제목: 재 조명, 영화 자이언트


글쓴이: 배전운

등록일: 2012-05-19 07:14
조회수: 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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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같이 등장 했던 천재 배우, ‘제임스 띤’이 출연 한 3편의 영화 중 마지막 이었던 ‘자이언트’, 200분 상영의 기인 영화를 처음 보고 감동 받은 지 반 세기 만에, 50인치 PDP TV와 DVD로 다시 한번 보고 감명을 새롭게 받았다. 흔히 들, ‘관광은 자기가 아는 것 만큼 본다’하듯, 영화를 보고도 ‘자기가 아는 만큼 감명 받는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펼쳐진, ‘한 서부텍사스 인의 Success Story’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는데, 반세기만에 내가 좀 지식이 늘어서 인지 반세기 전에 비하여 새로운 흥미를 느꼈다. 원래 여류작가‘에드너 파버가 서부텍사스에서 세계적 석유제왕으로 성공한 ‘글렌 멕카시’의 입지전적 스토리를 재 구성하여 쓴 것을 ‘명화중의 명화’만 감독했던 ‘조지 스티븐스’가 영화화 하였다. 제임스 띤의 연기가 백미 이기도 한 이 영화는 멕시코인 들로부터 뺏다 싶이 하여 사들인 방대한 토지에 일구었던 2대에 걸친‘베네딕트’(록 허드슨)가의 초대형 목장이 석유 밭으로 바뀌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었는데,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록 허드슨이 나눈 한마디가 오늘날로 치면 ‘보수’와‘진보’의 uncompatibility 를 표출 한 것 같아 초미의 흥미를 끌었다.                                                     목장의 카우보이 였던, ‘띤’은 ‘베네딕트’의 누나가 말에서 떨어져 죽으면서 약간의 땅을 유산으로 받는다. 시가의 두 배를 돈으로 줄 테니까 땅을 내 놓으라는 ‘베네딕트’의 설득을 뿌리치고 거기에 석유탐사 드릴을 박고 대박을 터뜨려 마침내 그 넓은 목장을 매수하여 석유 밭을 만든다. 오늘 날, 미국의 석유, 아니 低硫黃油의 세계적‘벤치마크’가 된 WTI(West Texas Intermediate) 가 바로 그 곳의 것이다. 참고로 WTI란 ‘서부텍사스 中質油’란 뜻이며 重質油나 더욱이 輕質油가 아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자식에게 유언하기를 ‘자동차의 모델을 바꾸지 말라’ 하였다. 모델을 늘 바꾸면 헌차 들이 똥 값이 된다. 자동차의 자산가치를 유지 하려면               모델을 바꾸지 안 해야 하고 그래야 고객들이 잘 산다는 옛날 경영전략이었다. ‘땅을 절대 팔지 않고 지킨다’ 하는 것에도 많은 교훈 들이 있다. ‘스탠포드’는 방대한 땅을 사서 대학을 건설 하면서 땅을 절대 팔지 말라 유언 한 것이 오늘 날까지 지켜지고 있다. 실로 한 도시를 이루고 있으나 땅을 ‘리스’로만 제공 할 뿐 이다. 오늘 날 그 땅 가치가 가히 천문학적이다. 텍사스의 2배, 한반도의 7배가 되는 ‘알라스카’는 러시아가 19세기 중엽 재정이 궁핍하여 미국에 720만 불에 팔았던 것 인데-- 너무 아깝다. 우리나라가 살 걸 그 뿐이랴, 멕시코는 켈리포니아와 뉴 멕시코 일대를 미국에 주민들에 대한 국가 채무를 떠 넘기면서 미국에 사실상 팔아 넘겼었다. 그렇게 안 했으면 어짜피 전쟁에서 젔겠지만. 카우보이 ‘제임스 띤’, 아니, 석유 왕 글렌 멕카시’는 ‘베네딕트’ 누나가 준 손 바닥 만한 땅을 끝내 팔지 않았다. 크게 될 사람은 그렇다. 땅을 사랑한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1820~1850 무렵에는 텍사스는 더위와 모기와 허리케인으로 점철된 살기 힘든 땅이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땅에 산 봉우리 하나 없이 평지이다. 소나무 숲이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릴 만큼 넓다.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뉴 멕시코는 사막지역이다. 왜 사막의 모래 밑에 석유가 있으리란 생각을 못 했을가? 스페니쉬들은 공짜로 확보한 땅이 지천으로 많고 살기 힘든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땅에 매력을 별로 느끼지 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쉽게 내 놓았지. 그래서 ‘베네딕트’ 1세가 방대한 땅을 차지 할 수 있었을 게다. 영국보다 해양진출을 일직 시작 했던 스페인이 멕시코와 텍사스, 켈리포니아, 아리조나, 뉴멕시코 에 이르기 까지 선점 하고 있었다. 뒤 늦게 미국인들이 미시시피강을 건너 텍사스에 나타나 처음에는 멕시코로 부터 자치권을 확보 하였다. 이것이 독립을 향한 일보였다. 이에 앞장 선 사람이 Austin이었는데 텍사스주의 수도 이름이 되었다. 이후 미국인들은 독립을 추진하여 Sam Houston 장군의 지휘로 전쟁을 통해 1836년에 독립을 쟁취하고 ‘Lone Star State’ 라 자랑 하였다가, 미국과 협상하여 28번째 주로 편입하면서 텍사스가 원하면 아무 때고 다시 독립 한다는 조건의 협정을 맺었다.               그의 이름을 딴 Houston 은 지금 미국에서 가장 넓은 도시이며. 내가 1970년도에 1개월간 머물든, 그때는 인구가 6위였는데 지금은 4위이다. ‘앵글로색슨’을 주류로 하는 영국인들은 식민이 아닌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온 이민들이었고 식민과 이민에 성공의 비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뉴욕에 진출하여 일부 지역에 커다란 벽을 쌓아 원주민을 격리시켰던 화란인 들은 원주민의 끈질긴 공격으로 결국 철수 하고 그 자리에 영국인들이 들어가 원주민과 친화하면서 살아갔는데 화란인 들이 쌓았던 긴 벽은 없어지고 이름만 Wall Street 라고 남아 있다. ‘메릴랜드’에서 텍사스의 ‘베네딕트’2세에게 시집 간 레슬리(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동부인 다웁게 매우 진보적 이었는데  ‘베네딕트’2세는 선친이 이루어 놓은 목장을 더욱 발전 시키는 게 꿈 이었으나 3세들은 어머니의 영향과 시대적 조류를 따라 매우 진보적이었다. 멕시코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대단한 텍사스에서 더욱이 보수 일변도인 ‘베네딕트’가에서 3세가 멕시코 여인과 결혼 하기도 한다. 하루는 레스토랑에서 취식 거절되고 있는 멕시코인 편을 들다가 식당 주인과 격투까지 벌려 음식 쓰래기에 쓸어진 남편을 평생 처음 보는 자랑스러운 장면이었다 말하자 ‘베네딕트’는 90살이 되어도 당신을 이해 못할 것 같다고 말 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조지 스티븐스’의 의미 심장한 장면 이었다. ‘보수와 진보’,’진보와 보수’동서고금을 통하여 널려 있으면서도 Compatible 하지 않는 것인가? 근래의 미국의 ‘신 보수주의’는 유태인의 ‘엘리트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면서 힘(군사적, 경제적, 과학적)으로 상대를 격파하고 The Greater America를 건설한다고 떠들어 대다가 미국의 고립을 촉진하고 미국을 포함 온 세계의 경제를 scrap 하고 말 뻔 하였다. 미국의 신보수주의(New Conservatism)는 원래 시카고대학의 Leo Strauss 라 하는 독일태생 유태인계 정치철학교수가 제창 한 것이었다. 그 이론의 종국은 이 땅에는 엘리트와 ‘로보트’가 남게 된다.  엘리트가 로보트 들을 인간 목장에서 통치 하게 된다. 했다는 것이다. 엘리트는 유태인?                               우리나라에도 보수주의가 옛날 텍사스 주 만큼 이나 강하다. 여기에 새로운 기치를 들고 일어 났던 것이 ‘신 사회주의’랄가? (내가 붙인 말) 우리나라는 찌들은 가난으로부터 해방하고 그런 가운데 불법 독제정권을 정당화하려던 군사통치, 좋게 표현하여 ‘산업화 세력’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노동운동을 불법화 하였다가 6공화국에 들어서서 타 분야와 함께 점차 풀어서 민주화 하였다. 초기 3년간은 끊임없는 노동쟁의로 임금이 2배로 튀었다. 나는 잘 한 일이라 생각하였고 기업은 스스로 합리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생각 하였다. 근로자의 소득이 2배로 늘자 소비재, 특히 가전, 자동차등의 내구성 소비재의 수요가 껑층 뛰어 대 호황을 몰고 왔다. 이 시기에 내 구성 소비재 산업이 수출기반을 다지고 오늘 날의 성공의 기초가 되었다. 일본 재계에서 평하기는 ‘동서고금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였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 하나가 있다. 고인이 된 DJ의 ‘대중경제’론 이다. 노동자의 소득을 키워 줌은 바로 수요창출과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된다. 경제의 발전은 근로자의 소득증대와 기업의 활동을 양 바퀴로 하는 수례가 이끌고 가야 한다. 나아가서 사회복지를 확대하면 복지는 물론 ‘수요’를 조성하여  경제 순환에 기여 한다 는 것이다. 사실, 잘 된 일인 것 같은데 오늘 날은 ‘기업환경조성’의 외로운 바퀴에 근시안적으로 몰입하고 있는 감이 있다. 참여 정부에서는 DJ 의 논리를 승계 및 확대 하여 국민의 ‘부’를 재 편성하여 노동자와 서민 쪽으로 상당부분 이동하려는 정책들이 있어 왔다. 나는 이를 ‘신 사회주의’성향으로 보고 국민적 저항과 경제의 침체를 가저 올 수 있으리라 생각 하였다. 그래 ‘신 보수주의’도 아니고, ‘신 사회주의’도 아니고, 그저 중도주의가 아쉬운 생각이 든다. 바둑에서 말하기를 ‘좌우 동행에 중앙에 묘가 있다’ 자이언트를 보고 나서 이것 저것 생각하다가 생각한 것이 左右同行中央於妙’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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